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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 혹은 야누스의 얼굴? 우리들 얼굴 - 김지희 글 | 김종근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겸임교수)
자화상이란 화폭에 자신의 얼굴을 끄집어내어 밝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화가는 자신의 실체를 알고 확인 하고 싶다는 내면의 욕구에 의해 자화상을 그리게 된다. 그러나 세기의 팝스타 앤디 워홀의 자화상을 보면 달리 사진을 매개로 하면서 거울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어 이를 실크스크린이란 판화기법으로 다양한 자화상을 제작한다. 앤디워홀은 이러한 산업사회의 대중적 이미지에 자신의 자화상을 직접적으로 대입시켰다. 김지희의 기분 좋은 얼굴들을 보면서 앤디워홀의 많은 자화상 시리즈와 동질성을 느끼는 것은 이들이 분명하게 초상의 이미지를 아이콘으로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김지희의 제작 방식은 워홀의 작품 제작과 표현에서 다르다. 그는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장지에 채색이라는 전통재료를 이용하여 일일이 수고스럽게 그리는 동양화의 정신을 아우르고 있다. 그러나 그의 표현양식은 여전히 동양화로 얼굴에 반복된 아이콘을 담아냄으로서 팝아트 속성을 내보인다. 특히 주제나 테마에서 치아 교정기를 낀 모습의 양 머리나 억지웃음과 같은 희극적 인상으로 사람들 표정의 조형성을 확보 한다. 그의 독특한 얼굴을 통한 웃음의 아이콘 언어는 단순하면서 이채롭다. 왜 그가 집요하게 이 팝아트적인 얼굴표정에 주목 했는지는 대학시절로 거슬러 갈 필요가 있다. 한 때 그는 한국화의 현대적 모색을 고민했고 이 때 그에게 주된 이슈와 화두는 “인물을 통한 현대인의 고독과 모순”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그런 고뇌가 그에게는 야누스적인 두 얼굴을 한 가면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인물 묘사가 독자적인 것은 아니지만 얼굴이 주는 두 얼굴의 아이러니컬한 요소는 그에게 더 할 나위없는 테마가 되기에 충분했다. 김지희는 지독하게 그가 택한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끈질기게 물어내는 스타일의 작가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한 일화가 있는데 그의 집념을 잘 말해 준다. 예고시절 “너는 국화가 부족하다”는 실기선생님의 지적에 다음날 새벽부터 자정까지 하루 종일 식사도 하지 않은 채 국화 2000송이를 그려 하루 만에 “국화를 가장 잘 그린다”는 경지에 오를 정도이니 그 악바리 근성을 짐작이 간다. 그 주제를 가지면서 그는 단 한순간도 스스로 “문제의식이 담기지 않은 작업은 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신념으로 창작을 지속 해 왔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가정신은 사회적인 문제 또는 인간의 문제 등을 주목하면서, 작품의 진정한 가치가 장식적인 것에 있기보다는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것이어야 한다는데 흐름을 같이한다. 그러고 보면 두말할 것 없이 그의 작품 속 가면의 얼굴은 바로 우리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리얼한 자화상임이 틀림없다. 우리가 이 젊은 작가의 작품에 주목하는 본질적인 사유는 무엇보다 얼굴에 내재 된 이중적인 메시지이다. 그 메시지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추어져 있는 밝은 얼굴 속의 고독한 내면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감정이 훤하게 드러나면서도 정작 그 진심은 위장된 얼굴. 눈물을 한가득 머금은 것 같은 오드아이(양쪽 눈 색깔이 다를 때 쓰이는 표현), '러브' 위에 새겨진 얼굴들. 결코 이들에 불행한 표식은 없다. 누구든 그의 작품을 접할 때 밝고 경쾌한 팝 아트의 신선한 느낌에 곧 빠져 들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외로움과 슬픔, 아픔 같은 우울한 요소들이 주는 상징적인 억압의 눈빛이 담겨있다. 화사하고 밝은 표정,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울고 있다. 어쩌면 그는 두 얼굴로 살아가는 슬픈 인간의 존재, 결코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표정위에 가면을 쓰고 의사소통을 하는 우리 현대인의 불편한 웃음을 선물한다. 그녀의 그림은 불편하지만 아주 재미있는 표정들로 가득하다. 메이커는 아니지만 한결 같이 눈이 큰 왕눈이 안경이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보이지 않는 이면의 환상과 숨겨진 아이콘으로 뿌리 칠 수 없는 매력으로 여운을 남긴다. 마치 웨민쥔(Yue Mijun. 1962~) 의 머리를 빡빡 깍은 대머리에 이빨을 능글맞게 드러낸 냉소적인 웃음을 자꾸만 떠올리게 한다. 그의 그림이 결코 가벼운 팝아트 수준으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눈의 표정을 감춘 커다란 익살스러운 선글라스와 날카로운 가시로 둘러싸인 선인장도 삶의 보이지 않는 양면성을 엿보게 한다. 그는 이렇게 고백 한다. “생존을 위해 획일적 잣대에 맞춰 살아야 하는 현대인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고. 또한 작가는 시대를 가장 먼저 읽어내는 촉수가 되어야 한다는 야무진 소신을 은밀한 언어로 말한다. 그러한 대표적인 작품이 달러의 문양이 그려진 안경을 쓰고 있는 얼굴로, 그들은 물질 만능주의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위장된 미소를 지닌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그의 이런 내면의 가시 돋친 이야기는 여기에 한정 되지 않는다. 작가는 ‘뉴욕을 사랑 한다’는, 서구를 무조건 동경하는 한국인의 맹목적이고 비겁한 의식을 넌지시 비꼬기도 하고 토끼와 양의 이미지로는 생존을 위해 착한 모습으로 둔갑하거나 위장한 표정을 가감 없이 풍자한다. 내면의 속내를 가면 뒤에 감추고 야누스적인 눈빛과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생존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작가는 줄기차게 현대인의 이러한 삶의 초상을 극명하게 노출 시키며 한 꺼풀 덮어씌운다. 요즈음 우리는 너무 트렌드 한 그림에 익숙해져 있고 트렌드 한 화풍에 회화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목도하고 있다. 너무 많은 젊은 작가들이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기 보다는 비주얼한 감각에 작가정신을 맡겨 놓고 있는 우려할 만한 시대에 살고 있다. 20대 후반의 이 젊은 여류작가의 작품에서 오늘을 사는 고독한 현대인의, 곧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행운이다. 역설적으로 ‘러브’라는 글씨가 새겨진 초콜릿은 겉으로 달콤한 것이 때로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해준다. 이 시대는 불행하지만 이런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물론 그 행복의 근원이 스스로의 감정을 감추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그로 인한 숙명적인 고독을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자전적 물음에서 출발 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 깨달음과 성찰의 시간을 주는 김지희의 그림은 따뜻한 인간의 가슴만큼이나 소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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