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부터 대만 전시, 6월엔 서울서 개인전 예정

코로나19 팬데믹 위기가 해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금리는 오르고 글로벌 IT기업들은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는 80여개의 아트페어가 열렸다. ‘1차 갤러리(화랑), 2차 경매’ 라는 전통적인 미술 시장 구도가 무너지고 부스를 임대한 컨벤션 방식의 아트페어(장터)가 시장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흐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연륜이 짧거나 작은 규모의 아트페어들이 연이어 취소되는 등 본격적인 구조조정기에 들어섰다.

김지희 작가는 이러한 등락을 거듭하는 국내 시장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위치에 올라섰다. 

태국 조이만 갤러리 기획전 <I Think Therefore I am 4. 2~ 5.7> 프랑스 파리 애프터눈 갤러리 개인전 <Farewell Kipling 4. 19~30>에 이어 대만 333갤러리 개인전<Gilding Fever 5. 20~6. 25>이 어어진다.

Sealed smile 2023 colored on Korean paper 135×97cm

조심스럽게 발을 들인 파리 전시는 유명 인사에게 작품이 판매되는 등 호성적을 거두었다. 서양 미술사의 주요 장면들과 조선 회화사의 연결점을 찾아 매칭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대만은 지난 2년간 국내만큼 성과가 좋았다. 지난해만 2022아트타이페이 등 5번의 전시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금년 1월에는 대만 방송사 TVBS 프로그램 <Chop Chop Show>에서 2016년 작 Sealed smile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작업 시스템

김지희 작품은, 하나쯤은 갖고 싶은 프리미엄 브랜드인 명품 백처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여성용 백이 명품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디자인, 소재, 염색 기술과 마케팅 전략이 결합되어야 하듯이 김지희 작품은 양산(量產) 제품인 명품 시장의 논리와 맥락을 갖추고 있다. 지난 3일 인터뷰에서 필자가 눈여겨 본 것은 작가의 작업실 시스템이다.

흔히 미술 작가를 ‘벽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작품의 창의성과 작업의 과정 때문에 굳이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지 않다. 음악, 연극 등 공연 예술은 주연 가수와 배우가 있지만 혼자서는 무대를 꾸밀수 없는 협업 시스템이 근간이다.

국내 미술계에 흔치 않은 스텝(어시스턴트)은 통상 프로젝트(대형 조형물 등)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지는데 반해 김지희 작업실은 작가의 지휘 감독하에 스텝이 상주하는 분업 시스템이 정착한듯 보였다. 국내외의 작품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경쟁력을 갖춘 기업,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이 보였다.

상품과 달리 미술 작품은 원산지를 따지지 않고 명기하지도 않는다. 작가의 서명만 있을 뿐이다.

태국 전시에서 ‘랏 끌라오’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랏 끌라오를 착용한 블랙핑크 멤버 리사가 태국 전통 춤을 춘 뒤 랏 끌라오 모형이 한 없이 팔려나갔다.

Sealed smile 2023 colored on Korean paper Applied 24k Gold leaf 50×50cm

5월 20일 시작되는 대만 전시에서 선 보이는 작품들은 대만의 멸종위기 동물인 구름표범(Sunda Clouded Leopard), 삵, 타이베이의 야경, 허우 샤오시엔(候孝賢) 감독의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의 무대이며 금광이 있던 도시 지우펀(九份)과 유명 찻집, 풍등(天燈) 등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작업하였다.

The Fancy Spirit 2023 colored on Korean paper Applied 24k Gold leaf 116×91cm

해외 시장을 겨냥한 김지희 작품에는 전략적 코드가 들어가 있다. 김지희는 작품과 연결점을 찾을 수 있는 지역성을 반영, 현지 관객, 컬렉터들과의 공감과 소통의 폭을 넓히며 작품 주제를 확장하는 중이다.

김지희 작업실은 시장 조사와 파트너 컨텍, 전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해외 담당 전문 인력을 두고 있다. 국내 전시회에서 작품을 산 중화권 컬렉터가 자국 갤러리를 연결하는 도움도 준다. 

판타즈마고리아 : 각종 도상들

김지희 작품은 언뜻보면 방송사 인기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가수들이 쓰고 나오는 화려한 가면을 연상케 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근현대의 도시를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판타즈마고리아(Phantasmagoria·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는 장면)에 비유한 바로 그 장면이다. 보이는 무언가를 제공할 뿐, 손에 잡히는 실체는 아닌거다. 

김지희는 10여년전 아프리카 어린이 자선 작업에 참여하면서 아프리카 아이들의 슬픈 눈을 맞닥뜨렸다.

‘아이의 눈엔 이슬이 맺혔다. 그 눈은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작가에게 “눈 = 안경 = 가면” 이라는 도식이 동일한 인식의 툴(tool)인지를 물었다.  

“안경은 소통 할때 자신을 감추기도 드러내기도 하는 장치이며 표정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이미지를 전하기도 한다. 가면이 철저하게 감추는 툴이라면 안경은 중의적인 의미이다.”

관객은 작품의 주인공이 쓴 안경을 통해 무언가를 들여다본다. 많은 레이어들 때문에 안경 너머 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안경이 가면으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김지희는 2008년 첫 전시회 이후 안경과 치아 교정기를 낀 소녀 이미지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시리즈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작가는 순수한 화려함 자체의 표현을 통해 욕망의 퇴행성보다는 그 안에 숨어있는 희망을 끄집어 냈다고 한다. 하지만 안경(선글라스)이 당초 ‘인간 본질 숨기기’에서 미디엄(medium)의 층(layer)이 늘어나면서 역할이 바뀌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스페인이 중심이 된 신성동맹군은 오스만투르크를 레판토 해전(1571)에서 격파한다. 양쪽 세력 모두 노를 젓고 기동하며, 병사들이 적함에 올라 백병전으로 승부를 가리는 갤리선이 주력 함선이었다.

The Fancy Spirit 2023 colored on Korean paper Applied 24k Gold leaf 163×130cm
The Fancy Spirit 2023 colored on Korean paper Applied 24k Gold leaf 163×130cm

칼레 해전(1588)에서 영국 해군은 범선에 포신이 길고 구경이 짧은, 제조 비용이 덜 드는 주철 대포를 탑재하였다. 스페인 무적함대의 패배는 아메리카와 인도 식민지를 영국에 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범선(帆船)의 ‘범(帆)’은 돛을 뜻한다. 범선은 바람의 힘에서 동력을 얻는다. 돛들을 섬세하게 조종하기 위해 수십, 수백 개의 밧줄이 달렸다. 바야흐로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대포 범선 제국 카를로 M. 치폴라 미지북스 2010>

범선은 답답한 한국 이라는 돛을 올릴 수 없는 내해(內海)를 벗어나 대양으로 나가는 작가 스스로의 야망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김지희는 2019년부터는 주변부에 머물렀던 동물 도상을 정면에 배치하고 있다. 유렵의 귀족 문화에서 기원한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 동물이 아니다. 인간의 기원이 담긴, ‘영험한 동물’이다.

The Fancy Spirit 2023 colored on Korean paper Applied 24k Gold leaf 91×116cm
The Fancy Spirit 2023 colored on Korean paper Applied 24k Gold leaf 91×116cm

작가는 특히 부엉이를 좋아한다. 귀엽고 신비로우면서 때론 그 형태가 달항아리같은 푸근함을 전한다고 한다. 날카로운 발톱과 공격성을 무색하게 하는 둥근 몸통의 대비도 매력적이고 조형적으로도 가장 관심 가는 동물이다.

트렁크 시리즈도 판타즈마고라아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2021년 8월, ‘벽에 거는 (회화)트렁크’ 작품을 처음 발표했다. 

트렁크 역시, 다른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작가의 머리를 때리는 완결체의 이미지로 떠 올랐다. 형태, 구도, 색상, 오브제가 동시에 드러났다고 한다. 

김지희 작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늘 긴장하고 있다. 다방면의 뉴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거리를 걸으면서 상점 간판 하나도 주의깊게 보는 습성이 있다. 작가의 스마트폰 메모란에는 아직 작품으로 구현하지 못한 그렇게 떠 오른 아이디어들이 누적되어 있다. 

트렁크는 무언가를 담고 어디론가 떠나는 용도이다. 현대인의 욕망이 드러난 안경(선글라스)쓴 인물이 그 트렁크와 매칭하기 위해서는 색으로 드러내야 한다. 색과 색이 만나 밸런스를 이룰 때까지 자연스럽게 감각적으로 치밀하게 조색(調色) 작업을 한다. 트렁크 시리즈는 캔버스와 액자를 결합한 형식의 작품이 되었다. 

김지희는 어느 시절에 뭘해야지 하면서 주제를 정하지 않는다. 작업 흐름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자유로움과 새로운 자극이 합쳐지면서 신작이 나타난다. 아마도 회화를 중심한 인물 작업은 오래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다. 작가는 여전히 인물을 통해 신화, 역사 등 하고 싶은 말이 많다.   

6월에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포럼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15년여 작업 결과인 전작도록(카타롤그 레조네)도 발간한다.

김지희 작가 / 제공 = 김지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