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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드로잉전 <종이 인형>
전시기간 2020. 7. 21-2020. 12. 11
전시장소 예술가방 (쿤스트원)
전시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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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드로잉전 <종이 인형>

 

드로잉은 겨울을 닮았다. 긴 겨울을 뚫고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 단단한 나무 껍질 안에서 숨을 고르는 어떠한 생명의 기별. 드로잉은 늘 그랬다. 엉성한 선들 속에 때론 새로운 그림에 대한 가슴 터질 듯한 설렘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다시 긴 겨울을 지나왔고 싹트고 피어난 작품들은 하얀 화이트큐브에서 한 작가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맘때 즈음 푸르른 작품 뒤편에서 완성을 독려하던 희망의 흔적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불완전한 태동이지만 훗날 완성된 모든 대작들은 그 미약한 태동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그 엉성한 기록들을 한 공간에 펼쳐놓고 싶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을 구상하며 진행한 드로잉들과 종이인형 드로잉으로 구성되었다.

내 추억의 한켠에는 종이인형 나나의 꿈이 있었다. 어린 날 종이인형의 화려한 연미복이 불현 듯 기억이 나서 드로잉으로만 진행한 연작이다. ‘나나의 꿈’, 아마도 종이인형의 타이틀은 그러했다. 가위로 오리고 어깨를 접어서 주인공의 몸에 걸치며 이야기를 만들었던 그 투박한 종이 한 장에는 동경이 있었다. 나나의 소품과 옷은 어느 문화의 것이라기 보다는 막연한 서구적인 판타지 속 고급스러움이었고, 그런 우아한 삶에 대한 동경은 이라는 제목으로 종이 한 판에 펼쳐졌다. 나를 알기 전 학습해야 했던 공주님 같은 좋은 삶, 욕망의 소품들이 나열되어 있던 종이 한 장의 가이드를 따라 연미복을 입고 파티에 가거나 구슬이 달린 핸드백과 하얀 푸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다시 종이인형을 만든다면 나나는 어떤 스토리 속을 살아갈까. 나나의 꿈을 가지고 놀던 어린시절의 나에게 다섯점의 종이인형 드로잉을 헌사하는 마음으로 끄적였다.

 

겨울과 추억,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지난한 길목의 흔적들.

이 여름의 초입에 오랜 겨울의 냄새들을 조심스럽게 펼쳐본다. 드로잉의 빈 틈 사이로 우리 함께 숨쉴 수 있길 바라며.


- 작가노트